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31년경 신승우는 전주공립농업학교 재학 중에 이강진(李康鎭), 윤희준(尹禧俊) 등과 공산주의 이론 연구를 위한 비밀결사 독서회를 조직했으나 발각됐다.
1932년 4월 10일 전주 읍내 조광호(趙光浩) 집에서 조광호, 이강목(李康牧), 이기수(李起銖)가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재건의 지역 준비 공작으로 전북혁명전위동맹(全北革命前衛同盟)을 조직했다. 이들은 각 학교에 독서회를 조직시켜 동맹휴교를 주도하고 학생들의 적화(赤化)를 도모할 것을 결정했다.
같은 해 9월 중 전주 읍내 윤희준이 자신의 숙부인 이기수에게서 학생운동을 전개할 것을 권유받았다. 이에 윤희준은 황서구(黃瑞九)의 집에서 신승우, 이강진, 채도석(蔡道錫) 등과 만나 전북혁명전위동맹의 확대와 강화를 도모하고자 그 하부조직으로서 전주공립농업학교에 다시 독서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학생들을 포섭하기로 결의하고 고복술(高福述)에게 동참할 것을 권유했다. 신승우는 1933년 3월 졸업 후에도 순창군(淳昌郡) 농회기수(農會技手)를 하면서 독서회 활동을 계속했다.
1940년 12월 8일 신승우가 일본 메이지(明治)대학에 유학하던 중에 태평양전쟁이 일어났다. 이때 신승우를 비롯한 일본 도쿄센슈대학(專修大學)의 신영우(申瀅雨) 등 일본 유학 고학생들은 신규식(申奎植)의 귀국 송별회를 빌미로 12월 12일 저녁 요코하마시 중구에 있는 스다초(須田町) 식당에 모였다. 이들은 한국의 독립을 위해 소련, 미국, 영국의 원조를 얻기 위해 노력하며, 한국으로 조속히 귀국해 농민층의 민족의식 계몽과 조직의 확대 및 강화 도모 등에 대해 합의했다.
신승우는 1931년 독서회를 조직해 활동하다가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체포됐다. 그러나 1932년 12월 2일 전주지방법원(全州地方法院) 검사국(檢事局)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후에도 다시 독서회를 조직해 공산주의 운동을 지속하다가 1933년 5월 임실(任實)에서 전북혁명전위동맹 세포단체가 발각돼 재차 체포됐다. 이로 인해 1935년 10월 25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평양전쟁 발발을 한국이 독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 귀국해 민중의 지도 및 계몽, 민중의 혁명적 단결을 계획했다가 발각됐다. 1941년 12월 13일~14일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혐의로 체포됐으나 1942년 8월 15일 기소유예됐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전주지방법원:1935. 10. 25)
-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34. 12. 29, 1935. 9. 2, 9. 15, 9. 24, 10 18,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