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박경락은 의병운동 당시 전라북도 순창군 구암면 이율동(淳昌郡 龜岩面 二栗洞)에 거주하였으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당대의 거유(巨儒)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이 거의하여 1906년 6월 태인(泰仁)·순창(淳昌) 등지에서 활약할 때, 인근의 여러 포수들을 규합하여 면암 의진에 참가하여 활약하였으며, 1907년 최산흥의 보부상 부대와 합세하여 10월경 일본 수비대와 접전하였다고 전한다.
1908년 음력 6월 15일 양윤숙(楊允淑)이 동지를 규합하여 거의하자, 그의 의진에 입대하여 도포장(都砲將)으로 활약하였다.
1909년 음력 정월 중순경에는 동료 60여 명과 함께 총 40정을 휴대하고 순창 군내의 여러 고을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체포되어 1910년 1월 징역 5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1권 8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