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평안북도 박천(博川) 출신으로 의암 유인석(毅菴 柳麟錫)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을미의병을 전개하다가 한계성을 느낀 의암이 만주에 들어갈 때 김화식(金華植)·백삼규(白三圭)·신지수(申芝秀) 등과 함께 수행하여 통화현 오도구(通化縣 五道溝)에 정착하여 거수지계(去守之計)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의암이 노령의 몸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환국을 주선하여 평산(平山)·태산(泰山) 등지를 옮겨 시봉하면서 강학을 받았다.
1905년 을사의병이 일어나니 해서지방의 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종유계(宗儒契)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구국 항쟁에 앞장서며, 뜻있는 지방의 군·관 지도자들과 연락을 취하여 가면서 일본 침략 세력 제거에 주력하였다.
이 종유계에서 한승태는 그의 고향 박천의 대표로서 활약하였다. 특히 이들은 일본의 주구가 되어 한반도 식민지화를 주선하던 일진회(一進會)를 타도하는데 앞장섰다.
1910년에는 학계(學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모금운동을 전개하다가 적에게 탐지되어 체포되었다.
이 일로 인하여 2개월간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의암집 38·46·47·55·70·85면
- 의암동문록
- 동아일보(1982. 8. 13)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74·75·7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