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6월 함남 (咸南) 함흥 (咸興) 에서 함흥청년회 주최 강연회에서 강연하다 검속되었고, 동년 (同年) 7월 동 청년회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이듬해 대중신문 함흥지국 설치 당시 과격한 광고문을 붙였다고 하여 보안법 위반으로 29일간 규류되었고, 1927년 서울에서 북풍회 계열로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창립대회에 함흥지역 대표로 참여하였으며, 1928년 함흥청년동맹 검사위원으로서 함흥지역 동맹휴교사건 진상에 대한 내용을 출판, 보급하였다가 체포되어 벌금 (罰金) 80원 (圓) 을 받았고, 1931년 9월 태평양 노조 사건으로 체포되어 1932년 4월 옥중 (獄中)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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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박강협은 1925년 6월 27일 함경남도 함흥 동명극장에서 열린 함흥청년회 주최 강연회에서 '우리의 생활과 예술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는데, 연사의 강연이 지나치게 과격하다하여 함흥경찰서에 검속되었다.
같은 해 7월 함흥청년회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이듬해 일본 동경에서 발간하는 대중신문 함흥지국 설치 당시 과격한 광고문을 붙였다고 하여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29일간 구류되었다. 아울러 1926년 10월 24일 함흥청년회 주최 강연회에서 '민중의 진로'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였다.
1927년 서울에서 북풍회 계열인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창립대회에 함흥지역 대표로 참여하였다. 1928년 함흥청년동맹 검사위원으로서 함흥지역 동맹휴교사건 진상에 대한 내용을 출판, 보급하였다가 체포되어 벌금 80원을 받았다.
이후 박강협은 1931년 9월 태평양노조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32년 4월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思想문제에 관한 조사서류(국내 항일운동자료)(2)(1927. 5. 19)
- 時代日報(1925. 6. 30, 1925. 7. 18)
- 東亞日報(1926.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