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9월 국권 (國權) 을 일제 (日帝) 에게 침탈 당 (侵奪當) 하자 실형 (實兄) 매천 (梅泉) 황현 (黃玹) 이 음독 (飮毒) 순국 (殉國) 한 것을 일경 (日警) 들이 병사 (病死) 로 검진 (檢診) 하니 절의 신위 (節義神位) 를 모독 기만 (冒瀆欺瞞) 하려한다고 일경 (日警) 들을 질책 (叱責) 하여 바로잡게하고 서울의 고관대작 (高官大爵) 들에게 일제 풍물 (日帝風物) 과 작위 (爵位) 를 받았음을 풍자시 (諷刺詩) 로 경구 (警句) 하며 3.1독립만세시 (獨立萬歲時) 에는 구례군 (求禮君) 주동자 (主動者) 를 배후 조종 (背後操縱) 하고 또한 신간회 가입 (新幹會加入) 을 조지 (阻止) 하려는 일경 (日警) 의 책동 (策動) 을 중지 (中止) 케 하였으며 창씨개명 (創氏改名) 을 반대 (反對) 하자 일제 (日帝) 가 직권 (職權) 으로 「황씨 (黃氏) 」로 창씨 (創氏) 한 것으로 제적상 (除籍上) 에 등재 (登載) 하니 민족 말살 정책 (民族抹殺政策) 을 통박 (痛駁) 하고 유시가훈 (遺詩家訓) 을 남겨놓고 마을 「연못」에 투신기세 (投身棄世)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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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경(日警) : 일제 경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구례(求禮) 사람이다.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에 통분하여 자결 순국한 친형 매천(梅泉) 황현(黃玹)의 사인(死因)을 일제가 병사(病死)로 왜곡하려하자 이를 바로잡아 형의 유지(遺志)를 지켰다.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구례에서의 만세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거사케하였다. 1927년 신간회(新幹會) 구례지회(求禮支會) 설립을 지원하였다.
또한 1939년 11월 일제가 한민족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소위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강요할 때 이를 거부하며 민족정기의 수호에 힘썼다.
그후 1944년 유시(遺詩) 가훈을 남겨놓고 마을 연못에 투신하여 세상을 버리니 모두 순국으로 추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續修求禮誌(1962. 5月 求禮郡) 45面
- 除籍謄本
- 墓碑銘(爲堂 鄭寅普撰, 1947. 6. 10)
- 絶筆詩文
- 湖南節義史(金正祥, 1961. 9. 21 再版) 15∼17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