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충청남도 홍성(洪城) 사람이다.
1919년 3·1운동이 서울에서 일어나자 당시 경신학교(儆新學校)에 재학중이었으나, 고향인 장곡면(長谷面) 화계리에 내려와 인근 주민들에게 독립만세시위의 취지를 설명하고 같이 참가할 것을 역설하였다.
거사일인 1919년 4월 7일 오후 8시경 동리 앞산에 모인 500여명의 시위군중 선두에 서서, 윤형중(尹衡重)과 함께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시위 행진으로 도산리(道山里)에 이르러 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를 습격하고 기물 등을 파괴하며 격렬한 시위를 계속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이해 10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형사공소사건부(1919. 10. 18 고등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