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담양(潭陽) 사람이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비밀연락원으로 활동하다가 일경에게 붙잡혀 가혹한 고문을 받았으나 당시 17세(항전별곡에는 15세로 기록되어 있음)의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반년 남짓 수감되었다가 출감하였다.
1933년 여름 그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의열단(義烈團)에서 강소성(江蘇省) 강녕현(江寧縣)에 설치하였던 조선혁명간부학교(朝鮮革命幹部學校)에 입학하여 군사적 지식과 군사기술을 배우고 1934년 4월 20일 졸업하였다.
그후 1934년 4월 25일경 중국중앙군관학교 낙양분교(中國中央軍官學校洛陽分校)의 군관대에서 의열단(義烈團) 제2기생으로 훈련을 받았으며, 1936년 7월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에서 학생특별반을 설치하고 당원들에 대하여 훈련을 실시할 때 간부인 화식위원( 食委員)이 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1938년 10월 10일 중국 한구(漢口)에서 조직된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에 입대하여 분대장과 정치간사가 되어 대일전쟁에 활동하였다.
1939년 봄 중국 호북성(湖北省) 통성(通城) 숭양지구(崇陽地區)에서 일본군의 탱크 2대를 파괴한 것을 비롯하여 1942년 9월부터는 진서북(鎭西北) 지역 책임자가 되어 일본군과 계속적인 전투를 전개하다가 적의 기관총을 탈취하였으며 한때는 일본군의 완전포위 속에서 탈출하는 등의 맹렬한 활동을 폈다.
1943년 초 진서북의 새로운 전투지역으로 나아가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1943년 4월 14일 일본군 100여명이 양쪽 부대로 나뉘어 공격함으로 10여명을 끝까지 살상시키고 태항산(太行山) 지구에서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民族運動史料(中國篇) (國會圖書館) 871·872面
- 思想情勢視察報告集(其2) 25·431·439面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12卷 136·137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6卷 127面
- 思想情勢視察報告集 257·261·378·385面
- 高等警察報(朝鮮總督府 警務局) 第4號 134面
- 抗戰別曲(金學鐵) 292·293·29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