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김승락은 1932년 9월경 상해(上海) 프랑스조계에서 조봉암(曺奉岩) 등과 함께 조선독립과 신사회 건설을 위한 수단으로 사회주의사상을 받아들여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상해를 근거로 하여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다가 먼저 조봉암이 체포되고 곧이어 대대적인 수색이 전개되어 김승락은 강문석(姜文錫) 등 5명의 동지들과 함께 일본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다.
동년 12월 조봉암을 비롯한 동지 7명과 함께 인천으로 압송되었다. 다시 신의주경찰서로 압송된 후 일본 경찰로부터 극악한 고문을 받고 예심에 넘겨졌다. 김승락은 신의주지방법원의 예심재판 중에 고문의 후유증으로 결국 32세의 나이로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32. 10. 16, 12. 4, 1933. 3. 5, 6. 1, 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