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6월
1932년 1월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27년 1월 15일 경상남도 진주(晉州)에서 여자잠업강습소(女子蠶業講習所)를 졸업한 후 고향인 하동에서 여성단체 및 청년단체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 7월 1일 근우회 하동지회가 설립될 때부터 서무재정부를 담당하여 활동하였다. 1929년 6월 9일 하동청년동맹 제2회 정기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서 여자부장(女子部長)으로 선정되었다. 같은 해 7월 서울에서 개최된 근우회 제2회 전국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이후 부산진(釜山鎭)의 조선방직회사(朝鮮紡織會社) 직공이 되어 노동운동에 참여했다가, 1931년 5월 초순경 ‘격문(檄文) 사건’에 연루되어 부산경찰서(釜山警察署) 고등계(高等係)에 체포되었다. 같은 달 27일 고광한(高光翰)·윤달선(尹達善)·임국희(林國熙) 등 16명과 함께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부산지방법원(釜山地方法院)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가, 6월 5일 불기소(不起訴)로 풀려났다.
출옥 후에도 부산에서 계속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하였다. 부산시내 각 공장의 총파업을 계획 준비하였으며, 1931년 6월경 김태영(金台榮)·김병철(金炳哲)·조복금(趙福今) 등과 함께 『노동자(勞動者)』라는 신문과 격문 약 150부를 인쇄하여 각 공장의 노동자에게 배포하였다. 이 일로 7월 13일 또 다시 부산경찰서에 체포되어, 일명 ‘부산적색노동조합협의회(釜山赤色勞動組合協議會) 사건’으로 송치되었다. 11월 1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후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를 중심으로 서울·인천·함흥(咸興)·평양(平壤)·원산(元山)·진남포(鎭南浦)·광주(光州)·대전(大田)·전주(全州) 등 전국 각지에 하부조직을 두고 활동한 ‘조선공산주의자재건협의회’라는 비밀결사의 검거 사건에 연루되어 또 다시 대구경찰서(大邱警察署)에 체포되었다. 1932년 1월 23일 대구의 고광륜(高光輪) 집에서 고광륜·이상조(李相祚)·김영애(金英愛) 등과 모여, 동지를 규합하고 사회과학을 연구하며 이를 대중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회과학연구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해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이 일로 7월 11일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송치되었다가, 21일 기소유예(起訴猶豫)로 석방되었다.
이후 11월 16일 하동경찰서(河東警察署)에 또 다시 체포되었다가, 12월 9일에 방면되었다. 1933년 부산의 적색교육노동조합(赤色敎育勞動組合)과 남해공산주의자전위동맹(南海共産主義者前衛聯盟)의 연락 담당 등으로 활동하였다. 남해공산주의자전위동맹은 1933년 봄 박태권(朴泰權) 등이 남해도(南海島)의 농민들을 대상으로 혁명적 농민조합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조직한 비밀결사인데, 이 조직과 부산지역의 연계를 위해 활동한 것이었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집행원부(執行原簿)
- 동아일보(東亞日報)(1929. 7. 31, 1931. 5. 8, 5. 12, 6. 14, 5. 22, 5. 30, 6. 8, 10. 1, 11. 15, 1932. 7. 10, 7. 12, 11. 19, 12. 12, 1933. 12. 15)
- 매일신보(每日申報)(1927. 1. 29, 1932. 7. 10, 7. 12, 7. 23)
- 중외일보(中外日報)(1928. 7. 5, 1929. 6. 15)
- 중앙일보(中央日報)(1931. 12. 3)
- 사상월보(思想月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검사국 사상부, 1933) 제3권 제4호 18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0권 94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