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3월 일본 (日本) 전협 (全協) 김속 (金屬) 대판지부 (大阪支部) 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동년 (同年) 9월 반제동맹 (反帝同盟) 대판지방위원회 (大阪地方委員會) 에 가입하여 다수의 회원을 획득하였으며, 이듬해 3월 신성만 (申聖萬) , 삼시 (三矢) 등의 권유에 의하여 일본공산청년동맹 (日本共産靑年同盟) 에 가입하여 관서지방위원회 (關西地方委員會) 동지구 (東地區) 책임자로 활동하였고, 동년 (同年) 7월에는 일본공산청년동맹 (日本共産靑年同盟) 대판시위 (大阪市委) 책임자로서 조선인을 참여시켜 조직을 확대하는 한편 반제동맹 활동을 통하여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을 비판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3년 정도의 옥고 (獄苦) 를 치르고 병보석으로 석방된 뒤 옥고 여독으로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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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정우생은 제주도(濟州道)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그는 일본에서 노동운동 등에 참여하면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1932년 3월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全協] 금속대판지부(金屬大阪支部)에 가입하였으며, 그해 9월 반제동맹(反帝同盟) 대판지방위원회(大阪地方委員會)에 가입하여 회원 획득에 노력하였다.
한편, 정우생은 1933년 3월 일본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하게 되었고 그후 일본공산청년동맹 대판시위원회 결성에 참여하였다. 대판시위원회에 소속된 정우생은 대판의 동지구(東地區) 책임을 맡았으며 1933년 6월에는 대판시위원회의 조직부장이 되었다. 정우생은 대판지역의 한인들을 규합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회원 50명을 공청원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이처럼 정우생은 반제동맹 등 일제의 정책을 비판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33년 7월 13일 일제경찰에 체포되어 8월 31일 기소되었다. 경찰에 검거되어 예심으로 옥중에서 생활하였고, 옥중에서 얻은 신병이 위중하여 1935년 8월 초순에 보석으로 출옥되어 그의 부친이 사는 경도(京都)에서 병을 요양하던 중 1935년 9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近代日本社會運動史人物大事典(1997) 3권 499면
-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朴慶植) 2권 698~700면
- 民衆時報 7호(1935.10. 1)
- 特高月報(1933. 8) 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