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라북도 임실(任實) 출신이다.
1907년 9월 이석용(李錫庸)의병장이 동향인 해산 전수용(海山 全垂鏞)과 함께 의거하여 장수(長水) 진안(鎭安) 용담(龍潭) 등지에서 활약할 때, 김공실은 동지 20여명을 규합하여 의거하고 이석용 의진에 입대하였다. 이후 도로부장(道路副長)에 임명되어 활약하였다.
9월 이후 의병장 이석용과 함께 진안 장수 사촌(沙村) 등지에서 적병과 접전하여 적지 않은 전과를 올렸다.
이석용 의진은 근거지를 옮겨가면서 넓은 지역에서 확대 활약하였으나 이에 따라 세력이 분산되어 약화되어 갔다.
한편 적군의 공세는 날로 치열해져 결국 1908년 9월 재기할 것을 기약하고 일단 의진을 해산하고 각기 고향으로 귀향하게 되었다.
김공실 역시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적은 이들의 재기를 우려하여 장수군 경찰관 주재소에 연행하여 심한 고문을 가하였다.
결국 그 여독으로 인한 신병으로 고생하다가 사망하였다고 전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600 601 60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2권 507∼56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