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11월 중국 (中國) 연길현 (延吉縣) 흥신동 (興信洞) 에서 정신하 (鄭信夏) 와 대한군정서 (大韓軍政署) 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위해 군자금 (軍資金) 모집과 동지 (同志) 규합 (糾合)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며 1925년 함북 (咸北) 청진 (淸津) 에서 청부청년연맹 (淸富靑年聯盟) 준비위원 및 검사위원으로 활동하고 1927년 9월 조선노농총동맹 (朝鮮勞農總同盟) 중앙검사위원과 1929년 신간회 (新幹會) 청진지회 (淸津支會) 재정부 (財政部) 에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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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합(糾合) : 어떤 일을 꾸미려고 세력이나 사람을 모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11월 간도로 이주하여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흥신동(興信洞)에서 정신하(鄭信夏)의 권유로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에 가입하여 경신분국(警信分局) 제19분국장(分局長)으로 활동하였다.
대한군정서는 대종교신자들이 북간도에서 중광단(重光團)을 기반으로 조직한 독립군단체로 국내로부터 김좌진(金佐鎭)을 영입하면서 만주지역의 대표적인 독립군단이 되었다.
장홍국은 주로 군자금(軍資金) 모집과 동지(同志) 규합(糾合) 활동을 하던 중 체포되었으며, 1921년 1월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소위 정치(政治)에 관한 범죄(犯罪)로 징역(懲役)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1925년 4월 함북청년대회(咸北靑年大會)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동년(同年) 11월 이후 청부청년연맹(淸富靑年聯盟) 준비위원 및 검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9월 조선노동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이 노총(勞總)과 농총(農總)으로 분리될 때 이에 참여하여 중앙검사위원에 선출되었고, 1929년 신간회(新幹會) 청진지회(淸津支會) 재정부(財政部)에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20. 7. 17, 1921. 1. 17)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1. 1. 20)
- 韓國共産主義運動史(김준엽, 김창순, 1990) 제3권 111면
- 現代史資料(姜德相) 제27권 352, 353면
-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 20(국가보훈처) 중국편(5) 48면
- 日本外務省記錄(外務省外交史料館, 1920. 8. 30) 제1권 253, 254, 256면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제8권 534면
- 朝鮮日報(1921. 1. 11, 1921. 1. 18, 1929. 6. 24)
- 韓國靑年運動史(鮮于基聖, 1976) 465, 466면
- 신간회연구(이균영, 1994) 648~65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