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경상북도 안동(安東) 사람이다.
1919년 3월 10일 대구(大邱) 남문외(南門外) 장날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의병인 이중린(李中麟)과 경술국치에 반대하여 단식 투쟁 끝에 순국한 이만도(李晩燾)의 친척으로, 일찍부터 이들의 뜻을 계승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전국을 순회하며 조선인의 대우문제·자유공동묘지·도로개수 등에 있어서의 일제정책의 부당성을 역설하였다.
그러던 중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안 그는, 대구로 가서 기회를 엿보다가 3월 10일 오후 5시경 남문외시장(새장, 덕산시장)에서 학생 및 기독교도등 수백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일본 군경의 수가 너무 많아서 시위행진은 중지되고 시장안에서 독립만세만을 외쳤으나, 현장에서 65명의 주동급 인물이 체포되었다. 그도 이때에 체포되었으며, 이해 5월 30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3·1운동실록(이용락) 747∼75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32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