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3. 2 같은 천도교도 (天道敎徒) 로서 전북 (全北) 남원군 (南原郡) 덕과면 (德果面) 사율리 (沙栗里) 에 거주하는 황동주 (黃東周) 가 동도 임실군 (任實郡) 둔남면 (屯南面) 오수리 (獒樹里) 의 천도교 전도사 이기동 (李起東) 으로부터 손병희 외 (孫秉熙外) 33인이 연명 (連名) 한 조선독립선언서 (朝鮮獨立宣言書) 2통을 영수 (領受) 하고 와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요소요소에 첩부할 뜻을 교사하자 즉시 밤을 타 사매면 (巳梅面) 계수리 (桂壽里) 장귀연 (張貴然) 과 동면 인화리 (仁化里) 박봉석 가 (朴鳳錫家) 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첩부하며 활동하다 피체 되어 징역 6월을 받고 옥고 후 옥중여독으로 순국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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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전북 남원(南原) 사람이다.
1919년 3월 2일 같은 천도교도이며 남원군 덕과면(德果面) 사율리(沙栗里)에 사는 황동주(黃東周)가 임실군(任實郡) 둔남면(屯南面) 오수리(獒樹里)의 천도교 전도사 이기동(李起東)으로부터 손병희(孫秉熙)외 32인이 연명한 독립선언서 2통을 전달받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붙여 취지를 알려 달라는 요청을 하자 이에 동의하고 그날밤에 기매면(己梅面) 계수리(桂壽里) 장귀연(張貴然)과 인화리(仁化里) 박봉석(朴鳳錫)의 집 등에 붙여 3·1독립운동의 취지와 내용이 곳곳에 전해지도록 활동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그 해 4월 24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옥고 여독으로 1919년 11월 1일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호적등본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537면
- 판결문(1919. 4. 24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