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전남 완도(莞島) 사람이다. 그는 1928년 완도군의 사립 약산학교(藥山學校)를 졸업한 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공장 직공으로 있으면서 1930년 일본노동조합 전국협의회(日本勞動組合全國協議會) 산하 동경금속노동조합의 세포반에 가입하여 동 조합의 파업선전 격문을 살포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후 그는 귀국하여 농업에 종사하던 중 1933년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폈다. 전남운동협의회는 해남(海南)에서 김홍배(金洪培)·오문현(吳文鉉)과 완도에서 황동윤(黃同允)이 중심이 되어 1933년 5월 14일 해남군 북평면 성도암(成道庵)에서 조직된 사회주의 비밀결사였다. 동회는 전남지역의 농민·어민·노동자·인텔리를 포함한 사회주의 운동의 통일적 지도기관을 목적으로 사무부(事務部)·조직부(組織部)·조사부(調査部)·구원부(救援部)의 조직을 갖추고 기관지로서 ≪농민투쟁(農民鬪爭)≫을 발간하였다. 그는 1932년 10월 이흥쇄(李興刷)·이기홍(李基弘)·최창규(崔昌珪) 등과 함께 완도군 고급면 용지포 간척지에서 소작쟁의를 계획하였으며 이후 동지규합에 힘을 쏟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그를 비롯한 동지들은 1934년 2월 중순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1936년 12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판결문(1936. 12. 28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 동아일보(1934. 9. 10)
- 조선일보(1934. 9. 7 號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