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4월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려는 영남(嶺南)의 학생들에게 그 방법 등 편의에 대해 조언했다. 1925년 서울에서 개최된 조선사회운동자동맹(朝鮮社會運動者同盟) 발기준비위원회에 괴산을 대표한 발기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1927년 10월 23일 괴산청년회관(槐山靑年會館)에서 신간회(新幹會) 괴산지회(槐山支會) 발기회를 개최하고 설립을 준비작업을 맡았다. 11월 26일 열린 신간회 괴산지회 설립대회에서 지회장(支會長)으로 선임되어 활동했다. 12월 27일 괴산청년회(槐山靑年會) 주최로 열린 ‘충청북도 사회운동자 간담회’의 좌장으로 회의를 이끌었다.
1928년 5월 13일 안철수(安喆洙) 등과 함께 괴산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열흘 동안 취조를 당한 후 24일 동지 8명과 함께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공주지방법원(公州地方法院)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8월 6일 예심이 종결되면서 정운석과 함께 면소(免訴) 처분을 받고 다음날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東亞日報)(1927. 10. 30, 12. 2, 1928. 5. 18, 5. 26, 6. 7, 8. 9, 10. 25, 11. 3, 11. 8)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제8집 44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