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
4.
5. 1929. 7월
6. 1929. 8월
7. 1930. 1. 20.
8. 1932. 2월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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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충남 천안(天安) 사람이다.
1919년 고향에서 3·1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었으나, 탈출하여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후 신흥무관학교를 7기로 졸업하고 청산리독립전쟁(靑山里獨立戰爭)을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중대장으로 활약하였다. 청산리전쟁후 일군의 추격을 벗어나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여 노령으로 넘어갔으나 러시아 공산당의 배반으로 독립군이 참살당하는 자유시 참변이 있자 다시 만주로 돌아왔다.
1923년에는 고려혁명군 조직에 참가, 동북만·밀산(密山)·호림(虎林)지방에서 무장항일활동을 계속하였다.
1925년에는 김좌진(金佐鎭)을 중심으로 하여 신민부(新民府)가 조직되자 이에 참가하여 경비대장으로 활약하였다. 1929년 7월에는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에 참가하였으며 동년 8월, 재만무정부주의자연맹과 신민부가 합작하여 재만한족총연합회(在滿韓族總聯合會)를 결성하고 김좌진을 위원장으로 추대하여 새로운 항일전을 도모하게 되자, 그는 군사위원장으로 임명되어 활약하였다.
1930년 1월 위원장 김좌진이 공산당원 김일성(金一星)의 조정을 받은 박상실(朴尙實, 일명 : 尙範, 金信俊)에 의하여 순국하자, 군사부 위원장이던 그가 중심이 되어 치안대(治安隊)를 조직하고 대장(隊長)이 되어 주범 김일성을 체포, 처단하는 한편 지방의 치안유지에 전력을 다하였다.
1932년 2월에는 한족연합회 주하(珠河)지방 집행위원장으로 활약하였다. 일제가 만주를 점령한 뒤에는 광복시까지 지하활동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시야 김종진선생전 89·92·101·102·103·111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40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81·4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