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서울에서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 회장으로 활동하고, 1911년 독립운동 기지를 개척하기 위해 서간도(西間島) 망명을 추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9년 서울 경신중학교(儆新中學校) 교사로 재직하면서 청년학우회를 발기ㆍ조직하고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10년경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에 서간도 이주 관련 기사를 보고 서간도 망명을 결의했다. 그리고 양기탁(梁起鐸)ㆍ임치정(林蚩正) 등이 추진하는 서간도 이주에 참여했다. 1910년 8월 서울에서 주진수(朱鎭洙) 등과 서간도에 토지를 매입하여 무관학교 등을 설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해 국권을 회복할 것을 결의했다. 김도희는 1910년 9월과 10월 선천(宣川)에서 이승훈(李承勳), 안악군(安岳郡) 안악읍 양산학교(楊山學校)에서 김구(金龜), 신천군(信川郡)ㆍ장연군(長淵郡)ㆍ송화군(松禾郡) 각 군에서 유문형(柳文馨)ㆍ고정화(高貞華)ㆍ안윤재(安允在) 등에게 서간도 이주자 모집을 요청하였다.
1910년 12월 20일경 서울 양기탁의 집에서 안태국(安泰國)ㆍ주진수 등과 함께 조선 13도에 각 1명씩 주임을 두어 이주자 모집을 담당하게 했다. 주진수는 강원도, 안태국은 평안남도, 양기탁ㆍ임치정은 경기도, 김구는 황해도 등 주임의 임무를 맡기로 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1년 7월 22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1911년 9월 4일 경성공소원에서 기각되어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地方裁判所 : 1911. 7. 22)
- 判決文(京城控訴院 : 1911. 9. 4)
- 刑事控訴事件簿
- 朝鮮總督府官報(1912. 10. 12)
- 大韓每日申報(1909. 8. 17, 10. 27)
- 新韓國報(1909. 9. 14)
- 新韓民報(1911. 5. 24, 8. 16, 8. 23)
- 每日申報(1912. 9. 29)
- 東亞日報(1925. 9. 27)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809~81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