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6.20. 만주 간도소재 (滿洲間島所在) 국민회 (国民会) 의 경호부 (警護部) 김강 (金剛) 의 휘하 (麾下) 제1분대장 (分隊長) 으로 임명 (任命) 된 후 전곡 (田穀) 을 거두며 독립군 (獨立軍) 군자금 (軍資金) 의 모집 (募集) 과 일경 (日警) 밀정 (密偵) 박문삼 (朴文三) 의 장남 (長男) , 김장헌 (金章憲) , 백자향 등 (白子鄕等) 을 체포 (逮捕) 하여 경호부 (警護部) 에 호송 (護送) 하고 밀정 (密偵) 최운칠 (崔雲七) 을 체포 총살 (逮捕銃殺) 하는 등 활동 (活動) 하다 체포 (逮捕) 되어 징역15년형 (年刑) 을 언도 (言渡) 받아 복역 (服役) 중 (中) 옥사 (獄死)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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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함남 북청(北靑) 사람이다.
1920년 만주로 망명하여, 동년 6월 20일 국민회(國民會)에 가입 경호부장 김 강(金剛)의 부하가 되었다. 그는 국민회의 제1분대장으로서 군자금 및 독립군을 모집하는 한편, 밀정인 박문삼(朴文三)의 처와 역시 밀정인 김장헌(金章憲) 및 중국인 백자향(白子鄕) 등을 체포하여 대평구(大平溝)에 위치한 경호부까지 호송하였다.
이어 동불사(銅佛寺)에 사는 밀정 최운칠(崔雲七)을 태평구 장락동(太平溝長樂洞)에서 사살하고 일경에 체포되었다.
그는 결국 1921년 11월 1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정치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옥중 순국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8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동아일보(1921. 11. 18, 1921.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