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전남 담양(潭陽) 사람이다.
광주고등보통학교 재학중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독립운동 시위가 일어나자 광주고보 가두시위에 참가 활약하였다.
이날의 시위후 광주학생의 지도적 인물인 장재성(張載性)과 장석천(張錫天) 등은 학생들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학생투쟁지도본부를 설치하고 학생시위를 강력하고 조직적인 투쟁으로 전개시켰다.
그리하여 동본부는 제2차 시위계획을 세우는 한편 격문을 인쇄하여 배포하였는데 이때 그는 김삼석(金三錫)·김홍남(金鴻南)·김동섭(金東燮) 등과 함께 인쇄물을 교부받아 제2차 가두시위날인 동월 12일 오전에 학생들에게 배포하였으며 가두시위에 앞장서서 활약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광주학생독립만세 시위운동에 대하여 1930년 5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30. 2. 26 광주지방법원)
- 판결문(1930. 5. 15 대구복심법원)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38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71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240·247·251·1512∼15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