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평북 박천(博川) 사람이다.
1906년 유인석(柳麟錫) 의병장의 문하생으로 유인석이 군사를 규합하였을 때 이에 가담하였으며, 유인석이 재차 요동(遼東)에 들어갈 때 그를 수행하여 노령(露領) 해삼위(海蔘威)로 가서 활동하다가 유인석이 1915년 동삼성(東三省) 지역에서 순국하자 그후 1921년 중국(中國) 상해(上海)로 가서 중국인 부호 임척풍(林拓豊)의 후원을 얻어 박은식(朴殷植) 등과 함께 일간신문인 〈사민일보(四民日報)〉의 편집인으로서 독립정신 고취 및 일제의 잔학상을 폭로하는데 주력하였다.
1930년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귀국할 때 안중근(安重根)의 이등박문(伊藤博文) 처단과 관련된 혐의로 신의주(新義州)에서 붙잡혔으나 일본영사관에서 중국 내의 각 영사관에 조회한 결과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어 1930년 11월 27일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기려수필 25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17면
- 동아일보(1930. 11. 27)
- 벽옹김창숙일대기 14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