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평안북도 신의주(新義州)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만세 운동 당시 기독교 목사로서 신의주(新義州)에서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같은 해 4월에 김병조(金秉祚) 장덕로(張德櫓) 이원익(李元益) 조상섭(趙尙燮) 등과 함께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1919년 3월부터 4월 초순에 걸쳐서 약 1천여 명의 독립운동자들이 상해로 모여 프랑스조계의 보창로(寶昌路) 329호 건물에 대한독립 임시사무소를 설치하고 임시정부의 수립을 서두르게 되었으며, 임시의정원의 개설부터 착수하게 되었다.
그는 4월 10일에 임시 의정원 의원으로 피선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에 적극 참여, 활동하였다.
같은 해 5월 23일에는 파리강화회의에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의 대표로 여운형(呂運亨)이 참석하게 됨에 따라, 동료 목사인 김병조(金秉祚) 손정도(孫貞道) 장덕로(張德櫓) 이원익(李元益) 조상섭(趙尙燮)과 장로인 김시혁(金時爀) 김승만(金承萬) 장 붕(張鵬) 조선익(趙善益) 등이 연서(連署)한 진정서를 만국 장로교연합회(萬國長老敎聯合會)에 탁송하였다. 내용은 일본이 조선교회에 대해 심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호소한 것이다.
같은 해 9월 1일에는 독립 만세 운동을 다시 일으키기 위하여 비밀서류를 휴대하고 상해(上海)로부터 귀국하던 도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신의주 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적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조선민족운동연감 5 8 17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09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25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자료 2권 390 391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3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61 16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142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17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508 530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42 4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5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