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라남도 영암(靈岩) 출신이다.
노일전쟁 후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 되어 1905년 11월(양력) 을사조약 늑결에 이어 1907년 8월 군대마저 해산되기에 이르렀다.
정관오는 1907년 11월 1일 함평군 신광면(咸平郡 新光面)에서 의거한 심남일(沈南一)의 의진에 입진하고 호군장( 軍將)에 임명되어 강달주(姜達周)와 더불어 활약하였다.
1908년 2월 13일 심남일 의진은 신광면에서 남평(南平)으로 진군하였으며, 3월 7일에는 강진군 오치동(康津郡 吾治洞)으로 진군하였다.
이때 적군 수백 명과 충돌하여 아침 6시부터 밤 10시경까지 격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으며, 4월 15일에는 장흥(長興)으로부터 쳐들어 온 적을 맞아 곽암(藿岩)에서 접전하여 적 3명을 사살, 격퇴시켰다.
6월 19일 장담원(長淡院)에서 급습해 오는 적 60명과 접전하여 적 5명을 사살하고 남평 철천(鐵川)으로 후퇴하였다.
6월 25일에는 노구두(老狗頭)의 적을 공격하여 적 5명을 사살하고 군마 2필과 무기를 노획하였으며 7월 그믐 왜장 금평산(琴平山)이 영산포(榮山浦)로부터 급습해 오므로 응전하여 적장을 비롯하여 10여 명을 사살하고 당산촌(堂山村)으로 후퇴하였다.
8월 1일 다시 적의 기마병 40여 명의 내습을 받아 적 20여 명을 사살하고 격퇴시켰으며 9월 20일에는 장흥 대치(大峙)에서 적의 내습을 받아 20여 명을 사살하였고, 10월 9일에는 해남(海南) 일군 헌병분대를 공격하여 많은 적을 사살하고 대둔사(大芚寺)로 퇴진하였다.
10월 27일 대장 심남일이 병이 들어 정관오 등을 불러 부대 인솔을 맡겼다.
그날 밤 노안리(老安里)로 출진하였는데 이 일이 적에게 탐지되어 의병 20여 명을 비롯한 의진의 주요 인사들이 전사하였다.
1908년 3월 7일 남평 진격을 시작으로 강진·장흥·해남·능주·나주·보성 등지에서 적과 접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계속해서 의병활동 중 1909년 8월 26일 체포되어 1910년 4월 4일 광주 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호남절의사 상권 504면
- 형사공소사건부(부산지방검찰청 등본 : 1982. 4. 29)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60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2권 573∼58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