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8년 4월 경성공립제2고등보통학교 3학년을 퇴학하였다. 같은 달 경성사립약학교를 입학하였으나 같은 해 12월 퇴학했다. 1929년 6월 6일 서울청년회 회원으로 참여했다. 같은 달 22일 서울청년회 서무재정부 상무위원을 맡았다. 발행인으로 출판했던 조선운동의 당면관(當面觀)이 1929년 7월 8일 출판 금지가 되었다.
1930년 1월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인 사회주의자들과 교류하였다. 같은 해 11월 안동으로 귀향했다. 귀향한 이래 경상북도 안동(安東)에서 안동청년동맹 예안지부와 서울청년회 경성중앙청년동맹에 참여하였으며, 1931년 3월 안상윤, 권중택과 안동콤그룹을 조직하고 교양부 위원이 되었다. 그리고 예안, 도산(陶山) 지역에서 세포조직을 담당하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노동자와 농민의 권익향상과 신사회 건설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1933년 7월 이른바 ‘안동 콤그룹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당시 나이는 25세였다. 1934년 10월 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1936년 2월 11일 대구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옥고 기간은 2년 8개월에 이른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1934. 7. 2)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34. 10. 3)
-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33. 7. 15)
- 동아일보(東亞日報)(1934. 5. 25)
- 안동의 독립운동사(안동시, 1999) 365, 36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