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전남 영암(靈岩) 사람이다.
1927년 3월 영암군 구림공립보통학교(鳩林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32년 8월 전남 영암군 군서면(郡西面)에서 야학교사로 활동하면서 전남운동협의회 영암군지부에서 활동했으며 구림야학단(鳩林夜學團)을 조직해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하였다.
그는 전남운동협의회 영암지부에서 활동하면서 전남운동협의회가 일제 식민지통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우선 농민들의 의식을 계몽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야학(夜學)을 설치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소작쟁의를 지도하였다. 이 때 전위조직을 건설할 목표를 세워두고 있었으나, 시기가 성숙치 못했으므로 우선은 대중운동에 의한 준비활동에 힘을 쏟기로 하였다. 전남운동협의회는 1933년 8월에 농민조합건설준비위원회(農民組合建設準備委員會)로 발전적으로 개편되었고, 해남을 비롯하여 완도(莞島)·장흥(長興)·강진(康津)·영암(靈岩) 등 5개 군에 지부조직이 설치되었다. 이 때 이들의 조직 방침은 '농민운동의 지도기관으로서 전라남도 각 군에 걸쳐 혁명적 농민조합을 건설하고, 농촌 각 마을에 3명 내지 5명으로써 농민반·청년반·소년반을 각각 결성하고, 이들 각 반을 면 단위로 통합하여 각 군의 혁명적 농민조합의 지부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적 농민조합 건설운동은 1933년 여름 강진군 병영주재소 방화사건으로 조직원 윤가현이 일경에 붙잡히는 바람에 중단되고 말았으며, 1934년 2월에는 동 조직이 발각되었다.
그는 이 일로 체포되어 1936년 1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京城日報(1934. 9. 10)
- 判決文(光州地方法院木浦支廳, 1936. 12. 28)
- 東亞日報(1934. 9. 10)
- 朝鮮日報(1934. 9. 7, 1935. 12. 25, 1936.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