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32년 3월 전라남도 완도군의 사립 교인학교(敎仁學校)를 졸업했다.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日本勞動組合全國協議會)에서 활동하다가 귀국한 황동윤(黃同允)의 지도로 사회주의를 배웠다. 이후 황동윤의 권유로 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1933년 5월 14일 전라남도 해남군(海南郡) 북평면(北平面) 성도암(成道庵)에서 결성된 전남운동협의회는 완도와 해남 등 5개 지역에서 혁명적 농민조합 등을 조직해 항일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지도기관이었다.
윤인옥은 1933년 11월 7일부터 1934년 1월 22일 사이에 완도군 군외면(郡外面) 황진리(黃津里) 자택 등에서 황동윤 등과 함께 마을 주민에게 ‘러시아혁명 기념일’ 등 각종 기념일의 유래를 설명하고 무산농민(無産農民)의 일치단결을 강조했다. 12월 말경 자택에서 황동윤을 책임으로 농민반(農民班)을 조직하였다.
1934년 2월 이후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에 연루되어 완도경찰서(莞島警察署)에 체포되었다. 9월 8일에 동지 50여 명과 함께 검찰로 송치되다. 1936년 12월 28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목포지청(木浦支廳)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1937년 1월 6일에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1936. 12. 28)
- 완도군항일운동사(완도군항일운동기념사업회, 2000) 64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