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용문사(龍門寺) 승려로서 박명호(朴明浩)ㆍ곽영준(郭英俊) 등과 함께 양평군 용문면(龍門面) 광탄리(廣灘里) 천도교구실(天道敎區室)에서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를 지원하기 위해 양평군, 강원도 홍천군(洪川郡)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음력 7월 13일경 박명호ㆍ곽영준ㆍ정호극(鄭鎬克)ㆍ윤만성(尹萬成)ㆍ최일만(崔壹萬) 등과 양평군 용문면 광탄리에 소재한 천도교구실에서 회합하였다. 이들은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자금을 모집하기로 결정하고 양재은(梁在殷)을 군자금을 보관하는 군자금모집단주(軍資金募集團主)로 임명하였다.
1920년 음력 8월 박명호 등이 작성한 '대한신정부(大韓新政府) 재무총장(財務總長) 이시영(李始榮)'의 인장(印章)이 날인된 대한신정부 군자금 모집원 사령서(辭令書) 및 금전영수서(金錢領收書) 등을 사용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8월 23일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다문리(多文里), 음력 9월 2일 오후 10시경 강원도 홍천군 동면(東面) 노천리(魯川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4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과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 1921. 4. 29)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 1921. 6. 13)
- 判決文(高等法院 : 1921. 8. 13)
- 刑事控訴事件簿
- 每日申報(1921. 4. 7,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