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19년 10월 경성부(京城府)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연통제(聯通制) 본부를 직하기 위해 활동하고, 동년 11월의 대동단(大同團) 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치렀다.
1919년 10월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聯合醫學專門學校) 2년생으로서,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원 이종욱(李鍾郁)의 임시 거처인 경성부 연건동(蓮建洞)의 숙소에서 이종욱·나창헌(羅昌憲)·송세호(宋世浩)·전필순(全弼淳) 등과 수 차례 만났다.
이 회합에서 독립운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조선 내의 각종 비밀단체와 연락하며, 또한 경성에 본부, 지방에 지부를 설치하여 상해에서 송치되는 각종 문서의 접수와 배포의 임무를 담당하고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연통제를 시행할 것을 협의하고 서약하였다.
이에 전필순은 본부에서 회계 사무를 담당하고, 윤종석은 송세호·나창헌 등과 함께 각도 감찰부(監察部)의 임무를 관장하기로 하였다. 이어 윤종석은 이종욱으로부터 상해 방면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내방하는 동지를 접대하고 문서를 접수할 장소의 설치와 기관 선정을 부탁 받자, 동월 경성부 화천정(和泉町) 5번지 민강(閔?)의 집에 들어가 동 취지를 밝히고 상해 방면에서의 내방자가 암호를 사용하여 오면 동지로 인정하고 이를 윤종석에게 통보할 것, 기밀문서는 자기의 영업장소인 경성부 남대문통 5정목 7번지 공성운송점 사무실 남창우(南昌祐)의 집 박춘식(朴春植) 앞으로 보낸 뒤 통보할 것을 약속받았다.
동월 30일 안동현(安東縣) 방면에서 박만식(朴萬植)이 와서 암호를 사용하자 민강은 이를 윤종석에게 통보하였다.
1919년 3월 말경 최익환(崔益煥)·전협(全協) 등이 경성부 봉익동(鳳翼洞) 전협의 집에서 "조선을 일제의 통치하에서 벗어나게 하여 독립국을 만들 것", "세계는 영원한 평화를 확보할 것", "사회주의를 철저히 실행할 것" 등의 3대 강령을 제창하고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을 조직하여, 단원과 자금을 모집하고 각종 선언서·기관방략(機關方略)·포고문 등을 등사하여 전국에 배포하면서 독립운동을 선전하였다. 이후 1919년 11월 대동단(단장 전협)이 주동이 되어 고종의 아들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을 상해로 망명시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도자로 추대하려다가 요녕성(遼寧省) 안동현에서 일본 경찰에게 간부 전원이 체포되었는데, 윤종석도 체포되었다.
1919년 12월 8일 구류되어 1921년 5월 7일 고등법원(高等法院)에서 소위 1919년 제령(制令) 제7호(政治에 관한 犯罪處罰의 件)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미결 200일 통산)을 받고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2년 2월 9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제9집 1004, 102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870~879, 884~890면
- 東亞日報(1921. 3. 10, 3. 24, 3. 25, 4. 14, 4. 29, 5. 8, 1922. 2. 22)
- 獨立新聞(1921. 4. 2, 5. 14)
- 新韓民報(1921. 5. 12)
- 每日申報(1920. 6. 29, 11. 23, 12. 8, 12. 10, 1921. 3. 9, 3. 24)
- 刑事控訴事件簿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高等法院:1921. 5. 7)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1. 3. 23)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20.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