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3월 1일 독립을 선언하고 4월 13일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세워지자 국내의 독립운동 열기가 고조되어갔다. 이에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전민족의 대동단결을 표방하며 김가진(金嘉鎭)을 총재로 추대하고 대동단(大同團, 朝鮮民族大同團)을 조직하였다. 대동단은 8월경부터 제2 독립선언 시위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감시가 심해 국내활동이 어렵게 되자, 10월 10일 총재 김가진은 상해로 망명했다. 이어 의친왕 이강(義親王 李堈)의 상해 망명을 추진하는 한편, 11월 27일 광화문 앞에서 제2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정은 1919년 10월경, 전협(全協)으로부터 비밀결사 조선민족대동단의 설립 목적과 취지를 듣고 유림단의 대표자로 가입하였다. 그리고 11월 27일, 나창헌·안교일(安敎一)·정규식(鄭奎植)이 선언서 3,000매를 각각 인쇄, 오후 5시를 기해 자동차 3대를 이용하여 신속하게 시내에 배포할 예정이었다. 이정은 거사 당일 배재학당에서부터 서대문정을 통과하여 종로 2정목 보신각 앞까지 시위에 참가하려다가 일경에 의해 체포되었다.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정치범죄처벌령)·출판법·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 200일 통산)를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豫審終結決定書(京城地方法院:1920. 6. 28)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20. 12. 7)
- 東亞日報(1920. 6. 29, 6. 30, 7. 1, 7. 2)
- 日帝侵略下 韓國36年史(국사편찬위원회) 제5권 387, 391, 394~395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제6권 27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