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8. 상해 (上海) 임정특파원 (臨政特派員) 이현수 (李賢壽) 로부터 달성군 교통사무지국장 (達成郡交通事務支局長) 으로 지명 (指名) 받고 같이 대구 (大邱) , 안동 (安東) , 영천 (永川) , 경주지역 북방관공서 (慶州地域北方官公署) 에 경고문 (警告文) , 자유신보 (自由新報) , 물품불매고지서 (物品不買告知書) , 납세거절 (納稅拒絶) 협박 포고문 등 (脅迫佈告文等) 을 방송 (放送) 하고, 주요로 상 (主要路上) 에 살포 (撒布) 하는 등 항일운동 (抗日運動) 을 전개하였으며, 공채 모집 (公債募集) 및 군자금 모집 (軍資金募集) 과 외국 선교사 (外國宣敎師) 를 통 (通) 한 독립청원서 (獨立請願書) 배포 (配布) 등 활동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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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경상북도 달성(達城) 사람이다.
1920년 8월에 상해(上海) 임시정부 특파원이자 경상북도 교통사무국 책임자로 국내에 파견된 이현수(李賢壽)로부터 달성군(達城郡) 교통사무지국장으로 임명되어 이현수와 함께 경고문, 최급경고문(最急警告文), 자유신보(自由申報), 물품불매고지서, 납세거절협박포고문, 공채모집서(公債募集書) 등을 대구(大邱), 안동(安東), 영천(永川), 경주(慶州) 등 지방관공서로 발송하고 중요한 거리에 살포하는 등 활동하였으며, 일제 공직자나 친일분자 부호들에게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함과 동시에 군자금을 모집하고 공채를 모집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1월 24일에는 화부회의(華府會議)에 대비하여 독립운동의 중요성을 영문(英文)으로 기록한 자유지(自由誌)를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배포하는 활동을 하다가 동지인 김달문(金達文) 김은수(金殷壽) 등이 체포됨에 따라 서울로 도피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고등경찰요사 213 21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285 128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