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충북 청주(淸州) 사람이다.
최세균은 1940년 5월 일본 동경부고등학교 재학 중 일본인의 민족적 차별에 모멸감을 느끼오던 차, 한국 유학생으로 가깝게 지내던 임병철(林炳喆)·오태호(吳泰鎬)·양응석(梁應錫) 등과 여러 번 회합을 가지면서, 민족적 차별에 따른 모멸감과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독립이 제일이라는 공감대를 형성시켜 나갔다.
그들은 같은 해 10월 경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에 희생할 각오를 다지는 동지적 맹약을 하고, 조직을 위장하기 위해 표면적으로는 학술연구를 표방하였다.
그후 그들은 뜻을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 자주 회합을 가지는 한편, 조직 확대와 단결력 강화를 위해 동지 규합과 민족의식고취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 일경에 발각되어 주도자들이 붙잡혔다.
그는 1941년 10월 붙잡혀 1942년 4월 4일 국내로 송국되었으나, 일경의 심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1943년 2월 25일 19세의 나이로 순국하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除籍謄本
- 昭和特高彈壓史(明石博隆·松浦總三編) 第7卷 250·251面
- 特高月報(1942. 4月) 117·118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1331·1332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