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8년 생업과 학업을 목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미곡상 점원 등으로 일하며, 종합상공실수학교(葺合商工實修學校)를 졸업하고, 사립북신상업학교(私立北神商業學校) 야간부에서 수학 후 1929년 3월 졸업하였다. 사립북신상업학교 재학 중 배상권(裵祥權)과 만나 교우하며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다.
1938년 4월 고베시 내 한인 학생들을 민족주의적으로 결집시키고, 이를 한국독립운동의 모체로 삼고자 했던 배상권의 계획에 동의하여 최창현(崔昌鉉), 문규영(文奎泳)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결의했다. 이때 표면적으로는 친목회를 표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독립운동을 도모하기 위한 유학생회 조직을 결정했다.
같은 해 10월 초순 무렵 고베시에서 배상권이 북신상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박영석(朴永碩), 이종만(李鐘晩) 등 14명과 함께 모여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북신상업학교유학생회를 조직하자, 이에 참여하여 회계부장에 선임되었다. 북신상업학교유학생회는 1939년 2월까지 십수 회에 걸쳐 "한민족의 참된 행복은 민족단결을 굳게 하여 한국기독교의 지도 및 해외 독립운동단체와의 연계 하에 일본 패전의 기회를 포착, 일제히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해야만 가능하다"는 취지의 연설을 통해 민족의식을 일으키는데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활동을 탐지한 일제 경찰에 의해 1939년 11월 11일 체포되었다. 1940년 12월 16일 일본 고베지방재판소(神戶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을 이유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대만 특별요시찰인 약식명부
- 소화특고탄압사(昭和特高彈壓史)(명석박융(明石博隆)・송포총삼(松浦總三), 1975) 제7권 35~37, 46~54, 81~89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1976) 4(1) 415~422, 54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집 1076, 1286~129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