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5년 이화학당(梨花學堂)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의 여자의학전문학교(女子醫學專門學校)로 유학했다. 4월 도쿄에서 김정화(金貞和) 등의 발기로 도쿄에 유학 중인 한인 여성의 상호간 친목 도모와 지식 계발 등을 목적으로 조선여자친목회가 조직됐다. 당시 도쿄의 여자의학전문학교 재학생으로서 조선여자친목회에 가입하고, 1919년 10월 23일 모임에서 서기로 선출돼 활동했다. 1920년 3월 1일 도쿄 히비야공원에서 도쿄에 유학 중인 한인 학생 약 80명과 함께 3.1운동 1주년 기념 만세운동을 벌였다.
귀국한 후 현덕신은 1927년 근우회 조직과 활동에 일조했다. 근우회는 이 해 4월 16일 서울 견지동(堅志洞)에서 도쿄여자유학생친목회에서 설립이 결의됨으로써 시작됐다. 이 단체는 여성의 친목 및 지식향상 도모를 위해 새로운 단체가 필요하다는 공감 하에 설립됐다. 현덕신은 같은 해 5월 27일 여성운동의 통일기관인 근우회 발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집행위원으로서 정치부를 담당했다. 1927년 10월 이후에는 전라남도 광주에 병원을 개원하면서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1929년 5월 25일 근우회의 전라도 지역 순회강연회를 주도적으로 주최했으나, 일제 경찰의 방해로 강연회가 중지됐다. 그러나 5월 29일 근우회 광주지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돼 활동했다.
현덕신은 도쿄에서 3.1운동 1주년을 기해 만세운동을 하다가 체포됐다. 이후 이른바 ‘요시찰인(要視察人)’으로 일제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27. 4. 28, 5. 29, 5. 31, 1929. 6. 16, 7. 3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집 32~35, 48~4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