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손익극은 1940년 도쿄 니혼대학(日本大學) 제2상업에 재학 중 김기영 등과 함께 한국인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항일조직을 결성했다. 손익극 등이 결성한 항일조직원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를 허위에 기반한 것으로 간파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한 것이었다. 특히 내선일체가 한국인을 착취하고 압박하려는 기만정책일 뿐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질곡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조선 민족의 참된 행복을 가져올 수 없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그 구체적인 행동 방식으로 조직원들을 각 분야의 전문가로 양성하는 한편, 일제에 의해 군인으로 동원된 한국인들의 무력 항쟁을 돕기 위해 힘쓰고자 했다.
그러나 손익극 등의 활동은 거사 직전 일본 관헌에 탐지되었다. 1941년 10월 조직원들이 체포됨에 따라 무력 항쟁은 어려워졌다. 손익극은 1942년 12월 22일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도쿄형사지방법원(東京刑事地方法院)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소화특고탄압사(昭和特高彈壓史)(태평출판사, 1975) 7월 286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박경식, 1976) 제4권 99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