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9권(2024년 발간)
1940년 3월 이후 일본 도쿄의 니혼대학 제2상업학교에 재학하며 우원태성(宇原泰成)과 만나 ‘일본의 조선 통치의 실체는 내선일체를 표방하면서 결국 조선인을 착취·압박하는 기만정책이라고 추단하고 이 질곡으로부터 이탈하지 않으면 조선 민중의 참다운 행복을 가져올 수 없다’고 협의하였다.
그는 “조선인에게 독립의식을 계몽하고 전선적(全鮮的) 혁명 기운의 양성을 바란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이원장우(李原章雨)를 동지로 가담시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조선독립을 위한 무력항전의 태세를 갖추고자 노력했다.
1941년 10월 30일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검거되어 1942년 7월 2일 송국되었다. 1942년 12월 22일 도쿄형사지방재판소(東京刑事地方裁判所)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를 받았다.
정부는 202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소화특고탄압사(아카시 히로타케(明石博隆)․마쓰우라 소조(松浦總三), 1976) 제7권 285~286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1976) 제4권 767, 819~820, 99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집 1334~1335면
-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국가보훈처, 2019) 일본편(13) 41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별집3 70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