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19년 음력 11월 평남 평양(平壤)에서 비밀결사 공성단(共成團)에 가입하여 단원을 모집하고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한 조합 설립에 공동으로 출자(出資)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음력 11월 평양에서 현기정(玄基正)이 중심이 된 비밀결사 공성단에 가입하였다. 현기정은 1919년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조맹선(趙孟善)을 단장으로 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결성에 참여한 인물이었다. 이후 국내로 들어와 공성단을 조직하고 만주의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와도 연계하여 활동했으며, 자신의 고향인 평남 개천군(介川郡)에서 직접 공성단 취지서와 계약서를 만들어, 평양에서 동지 김창섭(金昌涉)을 통해 최상홍을 비롯한 박도현(朴道鉉)ㆍ백계홍(白啓洪)ㆍ박제봉(朴濟鳳) 등을 단원으로 가입시켰다.
공성단에서는 역원(役員)을 선정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우국금(憂國金)이라는 명목으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여 공성단 명의로 대한독립단 통신부(通信部)로 보내는 등의 활동을 펼쳤으며, 『독립신문(獨立新聞)』, 「포고문」 등을 국내로 들여와 배포하였다. 또한 최상홍 조카의 처가 사람인 오완종(吳琓鍾)과 김창섭 등은 1919년 12월 '1920년 1월 1일은 폐점(閉店)하고 일본국기를 띄우지 말라'는 내용의 문서 100매를, 그리고 1920년 2월 28일에는 조선독립에 관한 문서를 작성하여 평양 내에 배포하기도 했다.
한편 1919년 음력 11월 20일경 재무부장을 맡았던 현기정이 유하현으로 출발한 후 일단 백계홍이 그를 대신해 재무부장을 맡아 적당한 지도자를 물색하였다. 1920년 1월 20일경, 평안남도 참사(參事) 안석(安奭)을 단장(團長) 추대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런데 이후 서울을 방문하고 같은 해 2월 16일경 평양으로 돌아온 안석이 장차 실력을 양성하면 자연히 독립의 시기가 올 것이므로 공성단과 같은 위험한 단체는 해산하고 경제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공동 출자해 조합을 만들어 객주(客主)를 경영할 것을 제안하였다. 단원들은 이 의견에 찬성하여 각자가 출자해 평양 관후리(?後里) 22번지에 8,500원 상당의 집 한 채를 점포로 구입하기로 했는데, 이때 최상홍은 1,000원을 출자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0년 10월 12일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에서 징역 5년을 받고 공소하여, 1921년 1월 29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공갈죄로 징역 4년을 받았다. 진남포형무소(鎭南浦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4년 7월 2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秘密結社共成團員檢擧의 件(1920. 5. 2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內地(10)
- 平壤共成團員의 檢擧(1920. 12. 27),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6)
- 每日申報(1920. 5. 20, 10. 17)
- 獨立新聞(1920. 5. 29)
- 東亞日報(1920. 5. 13)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7) 제2권 943~944면
- 仙沼面誌(平安南道 順川郡, 1992) 9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