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20년 12월경 평남 맹산에서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大韓獨立靑年團聯合會) 평안남도 총무 김봉규(金琫奎)의 권유로 동 연합회 모험부원으로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독립문서 배포, 친일부호 처단 등의 활동을 하였다. 동 연합회는 맹산 선유봉(仙遊峯) 아래의 호굴(虎窟)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지하 조직을 비밀리에 만들어갔다. 이원보는 맹산군 동면 신중리 거주 친일부호 방반주(方般柱)를 처단하였고, 1921년 1월 15일 동지들과 함께 영원경찰서의 무기를 탈취하고 친일경찰을 처단하며 군자금을 모집할 것을 협의하였다. 이에 1921년 3월경, 동지 조원보(趙源輔)와 함께 영원군 영원면 풍산리 거주 박처찬(朴處燦)·김용화(金龍燁)·김순경(金淳景)·최경순(崔京淳)·최봉순(崔鳳淳)·김계봉(金桂鳳) 등으로부터 군자금 840여 원을 모집하여 김봉규에게 주었다. 1921년 4월 상순경부터 동지 김낙구(金洛九)·김낙도(金洛圖)·박창수(朴昌洙)와 맹산·덕천·영원 각지에서 나병삼(羅炳三) 등 동지들을 규합, 자산가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도록 했으며 독립문서를 인쇄 배포하였다. 5월 16일 동지의 행동을 방해하는 자를 처단할 목적으로 맹산군 옥천면 잉포리 최석모(崔錫模) 집에 잠복 중, 맹산경찰서 순사 8명의 습격을 받고 완강히 저항하였다. 그러나 도저히 체포를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대한독립만세를 세 번 부른 후 자결하였다. 당시 이원보는 군자금 2,000여 원과 독립문서 여러 장을 품고 있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7권 392면
- 東亞日報(1921. 6. 3·6. 1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0집 1250∼1254면, 제14집 496∼497면
- 秘密結社 大韓獨立靑年團聯合會 檢擧의 件(연월일 미상)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2)
- 羅炳三 判決文(高等法院:1922.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