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기도 김포(金浦) 사람이다.
그는 1919년 당시 김포군 고촌면 신곡리(高村面 新谷里)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3월초 손병희(孫秉熙) 등 민족대표가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이래로 전국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행하고 있음을 전해듣고 이곳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해 왔다.
거사준비를 서둘러 오던 중 1919년 3월 24일 윤재영(尹在英)·윤주섭(尹周燮) 등과 함께 주동이 되어 동리 사람 50여 명과 동리 뒷산에서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붙잡혔으나 이날 시위의 영향으로 다음날도 만세시위는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이해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5. 22 京城地方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156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331∼33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