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남 통영(統營) 사람이다.
1927년 3월 경남 통영(統營)에서 친일파의 매국적 발언을 응징하는 시민대회를 주도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당시 경남 도평의원(道評議員)으로 있던 김기정(金淇正)이 한국인의 교육 불필요와 한국어 통역철폐 등의 매국적 언사를 행한 일이 생기자, 그는 박봉삼(朴奉杉)·박종한(朴鍾漢) 등 10여 명과 함께 친일파 김기정에 대한 시민징토(市民懲討)대회를 주최하면서 시민들에게 김기정의 매국 발언을 고발하는 한편 김기정의 사퇴 및 추방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김기정의 집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는 등 군중집회를 주도하였다. 그런데 이 일로 박봉삼·박한종 등 10여 명이 일경에 붙잡히자, 함께 투쟁하다가 붙잡힌 동지들의 석방을 위해 1927년 5월에 규탄문을 배포하는 한편 수천 명의 군중을 동원하여 시민대회를 개최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그는 1928년 12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騷擾)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820∼828면
- 판결문(1928. 12. 13. 대구복심법원)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