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전남 장성(長城) 사람이다.
1918년 서울의 중앙학교(中央學校)를 졸업하고, 1919년 3·1만세 시위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의 지명수배를 받고 인사동(仁寺洞)에서 의친왕(義親王)의 근친(近親)인 김명자(金明子)의 도움을 받아 3개월 동안 피신하여 있었다.
그 뒤 안재봉(安在鳳)이 제공한 150원(圓)의 독립자금을 가지고 중국 상해(上海)로 탈출하여 지하신문 발행자료를 국내의 이희승(李熙昇)에게 밀송하였다.
1919년 9월 2일에는 상해 임시정부의 특파원으로 전라도(全羅道) 지방에 파견되어 동지들을 규합하고, 독립 자금을 모으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1923년에는 고양군(高陽郡) 뚝섬에서, 1925년에는 종로 관철동(鍾路 貫徹洞)에서, 1927년에는 종로구 가회동(嘉會洞)에서, 1935년에는 종로구 재동(齋洞) 등, 장소를 옮겨가며 한약방인 "공인당(共仁堂)"을 경영하였다.
그런데 이 공인당한약방은 김성수(金性洙)·안재홍(安在鴻)·여운형(呂運亨)·한용운(韓龍雲) 등의 밀회장소로 이용되었으며,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의 비밀연락처로 제공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적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민족운동연감 2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79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00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