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함경남도 풍산(豊山) 출신인 한해는 1923년 서울청년회에 가입하고, 평양에서 노동자로 평양노동연맹을 조직했다. 그해 7, 9월에는 조선노동동맹회(朝鮮勞動同盟會) 주최로 평양에서 열린 노동대강연회에 연사로 나서 ‘우리의 살 길은 단결’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기도 했다.
1924년 4월 18일 서울 광무대에서는 참가단체 182개, 출석대표 295명이 모인 가운데 조선노농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의 창립총회가 열렸다. 이때 한해는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어 핵심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해 고려공산동맹에 가입하여 노동자, 농민의 권익 확보와 일본 제국주의 타도를 함께할 동지 확보에 나섰다. 평양 등지에서 오월청년회(五月靑年會) 독서부 활동 등을 주도하다 일경에 붙잡혀 1925년 8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등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른 후 출옥하였다.
1926년 4월 한해는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창립준비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조선공산당 제2, 3차 대회에 참석하는 등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주도하였다. 1928년 블라디보스톡에서 ml파 조선공산당을 재조직한 한해는 이듬해 5월 중국 길림(吉林)에서 책임비서로 선출되었으나 곧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民族運動史料 中國篇(국회도서관) 889면
- 時代日報(1924. 9. 1)
- 國外容疑朝鮮人名簿(조선총독부경무국, 1934) 21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0권 107, 114면
- 東亞日報(1923. 7. 20, 9. 4, 1925. 6. 13, 8. 28, 12. 12, 1929. 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