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평소 한국인의 행복은 오직 독립을 달성해야만 가능하다는 굳은 의지아래 청년들을 대상으로 독립의식 고취에 힘을 쏟았다.
이 때 그가 주장한 요지는 "한국인 청년이 일본을 위해 군인이 되어 전사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로서, 젊은 청년들은 나라없는 마음에 상심하지 말고 독립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 이를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청년의 사조는 독립의 조류에 조응해야 하고, 현실의 다리 저편에 독립의 광야가 펼쳐져 진면목인 사람은 그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역설하였다.
1944년 그는 태평양전쟁의 상황을 주시하면서 일본의 패전을 예견하였고, 일본의 패전과 더불어 맞이하게 될 조국 독립의 건설에 여운형(呂運亨)을 지도자로 추대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이와 같은 내용의 편지를 친우에게 보내다가 일경에 발각되어 붙잡혔다.
그는 붙잡힌 후 재판을 치르던 중 일경의 모진 고문으로 인하여 1945년 6월 2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2집 1277∼127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