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충남 논산(論山) 사람이다.
1919년 10월 경,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인 김탁(金鐸)·한상건(韓相建) 등과 함께 부호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았다.
9월 말경, 임병완은 임시정부 요원 김탁으로부터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에 동참하라는 권유에 찬성하고, 김강(金剛)·홍태우(洪泰祐) 등과 행동을 같이 하기로 하였다. 우선 그는 망우리에 있는 선산을 임의로 매각하여 임시정부 군자금으로 제공하였다.
그들은 1919년 10월 2일, 서울 수창동의 부호 홍종옥 집에 들어가,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경무국(警務局) 직원이라 속이고, 그를 모처로 연행하였다. 그리고 3일 아침 한상건은 총독부 경무국 사법계 형사 김수희라고 속이고, 홍종욱의 집에 가서 한일은행 서대문지점 예금통장과 도장 1개를 가져왔다. 그들은 통장에서 370원을 인출하였다.
그리고 10월 9일 오후 5시경, 그들은 모의하여 서울 인사동 윤병집(尹秉輯)을 누하동(樓下洞) 빈집으로 불러내어 독립자금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는 무산자(無産者)라며 이에 응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들은 그를 돌려보내기로 하고 이런 사실을 절대 누설하지 말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그들의 군자금 모금 방법은 서울 시내의 부호들을 미리 물색한 다음, 그들을 설득하거나 총독부 명함을 위조하여 연행하거나 하여 그들에게 임시정부요원들의 활동상황과 재정의 어려움을 호소하여 그들로부터 군자금을 얻어내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행동을 유심히 살펴오던 일경들은, 그들이 10월 18일 서울 죽첨동(竹添洞)에서 모의하는 것을 탐지하고 그들을 체포하였다.
그는 종로경찰서로 연행되어 신문을 받던 중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1920년 3월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9輯 362面
- 判決文(1920. 3. 13. 京城地方法院)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1卷 分冊 14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