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황해도 평산(平山) 사람이다.
조선청년회연합회(朝鮮靑年會聯合會), 연통부(聯通府) 등에 참가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일찍이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뜻을 세웠던 인건은 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어 가던 1917년 노령과 만주 일대를 돌아다니며 국제정세를 주시하던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국내에서 활동할 뜻을 세우고 1920년에 귀국하였다.
귀향 후 그는 고향인 황해도 평산군에서 평산청년회(平山靑年會)를 주도하여 조직하였고, 1920년 12월 조선청년회연합회가 결성될 때 평산청년회의 대표자격으로 참가하였다. 조선청년회연합회는 비록 일제의 허가를 받아 창립된 합법적인 등록단체였지만, 창립 당시 전국 각지에서 116개 청년단체 대표자 124명이 참석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3·1운동 이후 분산된 청년단체의 역량을 결집시켜 민족의식을 제고하고 청년운동을 대중화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이같은 청년회를 중심으로 표면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이면으로는 상해 임시정부와 연결되어 연통부(聯通府)의 평산군 군감부(郡監府) 산하 면사감으로 활약하였다. 1919년 7월 임시정부의 국내 조직으로 세워진 연통부는 독립운동자금모집 및 임시정부의 선전, 민족의식의 고취, 독립운동세력의 규합 등을 주요 활동지침으로 정하였다. 이렇게 연통부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연통부의 조직이 발각되는 것과 더불어 일제에 붙잡혀 1921년 10월 11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로 징역 1년 2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2년 10월 출옥 후 그는 무장투쟁에 투신하고자 만주를 거쳐 러시아로 망명하여 러시아군에 입대하였다. 러시아군대에서 훈련을 마치고 1924년 5월 중국 관내로 건너가 운남사관학교(雲南士官學校)에 입학하여 1927년 졸업하였다. 그후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30년대 중국 관내로 이동하여 중국군에 편입되어 1943년 중국군 장교로 광동(廣東)에서 활동 중, 일본군 특무대에 붙잡혀 국내로 이송, 연금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0卷 989面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1卷 分冊 493·496面
- 國外容疑朝鮮人名簿(總督府警務局) 13面
- 彰義錄 丁未義邀 黃海道, 韓國獨立運動史資料集(韓國精神文化硏究院) 義兵篇 613面
- 平山郡誌(平山郡誌編纂委員會, 1993) 368·376·694·1265·1282·1284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4輯 474·478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