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29년 10월 함평농잠보습학교(咸平農蠶補習學校)에 입학하여 재학 중 같은 해 12월 다른 학생들과 함께 백지답안제출동맹(白紙答案提出同盟)을 결성하여 1930년 3월 24일 퇴학 처분을 받았다.
한편 1930년 3월 1일 평소 알고 지내던 이현(李鉉) 등이 3.1운동 기념일을 기회로, 군중을 규합하고 전단을 배포하려 계획하다 발각되어 경찰서에 인치되었다. 그러자 이 계획을 이어 전단을 작성하고, 함평읍내에 배포할 것을 기획했다. 함평보통학교 학생 장희술(張喜述)・강석빈(姜錫斌)・이정행(李正行)・정대연(鄭大演)을 설득하여 이에 찬성하게 하였다. 같은 달 3일 밤 함평읍내에 있는 이정행의 집에 모여서 함께 구한국 국기를 그렸고 “2천 만 동포여, 11주년 기념은 다가올 큰 적과 용감하게 싸워라”라는 등의 문구를 색지에 기재한 전단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장희술・강석빈 등과 함께 함평읍내에 살포하였다.
1930년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5년을 받을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 : 1930. 5. 29)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3. 28, 5. 4, 21, 31)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