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문(檄文) : 1.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2. 급히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각처로 보내는 글. 3.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달래거나 꾸짖기 위한 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이이규는 1924년 8월 조선형평사 중앙총본부 임시대회에서 교육부 상무집행위원이 되었고, 조선노동당 창립총회에서 노농부 소작과 위원에 선임되었다. 동년 11월 북풍회(北風會) 창립총회에서는 집행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926년 3월에 결성된 ‘함남사회운동자동맹’이 간부 채규항(蔡奎恒)·도용호(都容浩)의 검거로 인해 활동이 미약해지자, 가을경부터 다시 재건하려고 노력하였다. 1926년 9월 10일경, 홍원군 삼호시에서 김석술(金錫述)·박형성(朴炯聖) 등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하여 신사상을 학습하다가 검거되어 홍원경찰서에서 취조를 마치고, 9월 26일 검사국에 송치되었으나 불기소로 석방되었다.
1927년 5월경 ‘함흥대중운동자동맹’의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동년 7월 2일 이순기(李舜基)·이수을(李秀乙)·홍기진(洪基鎭)·김영숙(金英淑) 등과 함께 함흥청년회관에서 신간회(新幹會) 함흥지회 설립준비위원회을 개최하고, 설립대회를 위한 안건 및 제반 준비 등을 담당하였다.
1928년 1월경, 함흥옹호동맹(咸興擁護同盟)의 위원으로 있으면서, 만주에서 강제로 쫓겨난 동포들을 위해 격문을 배부하며 2일 간 철시(撤市)한 사건으로 함흥경찰서에 강제 구인되었다가 8일 만에 석방되었다.
1929년 8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태평양노동조합 제2차 대회에 참석하였고, 이듬해 태평양노동조합 블라디보스토크 지부 조선부 파견원으로 국내의 노동조합운동을 지도하기 위해 입국하였다. 1931년 1월, 함흥노동연맹을 혁명적 노조로 개편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조선적색노동조합 함남위원회에서 활동하였고, 김순만(金順萬)·김호반(金鎬盤) 등과 함께 철원사회주의자협의회(鐵原社會主義者協議會)의 결성에 간여해 활동하였다. 1931년 6월경, 협의회 사건이 발각되자 경찰의 체포를 피해 러시아로 건너가 『레닌의 길』 편집부 지도원으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國外容疑朝鮮人名簿(총독부경무국) 29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4집 295면
- 조선노동당 창립총회의 건(1924. 8. 18) 검찰행정사무에 관한 기록 2
- 秘密結社 鐵原社會主義者協議會事件 檢擧에 關한 件 1(1934. 7. 16)·2(1934. 7. 20) 警察情報綴
- 北風會系 殘黨의 動靜에 關한 件(1927. 5. 19) 사상문제에 관한 조사서류 2
- 사상휘보 제1호(고등법원검사국 사상부, 1934. 11. 30) 43, 50면
- 高等警察關係年表(朝鮮總督府警務局, 1929) 208면
- 東亞日報(1924. 2. 23·8. 19, 1925. 2. 3, 1926. 10. 19, 1927. 7. 5·9. 11, 1928. 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