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20년 음력 9월 평남 맹산군(孟山郡) 일대에서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大韓獨立靑年團聯合會)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지원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는 1920년 음력 5월 평남 대동군(大同郡)에서 박응률(朴應律)을 단장으로 조직된 대한독립청년단 등의 연합회 조직으로서, 평남 지역 총무 김봉규(金琫圭)가 박응규 등과 함께 설립하였다. 김봉규는 1920년 2월 중국 봉천성(奉天省) 관전현(寬甸縣)에서 결성된 임시정부 군무부(軍務部) 직할의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 사령장(司令長) 조맹선(趙孟善)의 부하였다.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의 목적과 활동은, '독립군 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고, 대한민국임시정부로부터 무기를 배급받아 친일분자를 처단하며, 항일독립전쟁이 시작되면 결사대를 조직해 무력투쟁을 전개하고, 국내에 파견되어 오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안내하는 것' 등이었다. 임원으로는 단장 박응률, 서기 김현재(金鉉載), 재무 황종해(黃宗海) 등이 선출되었다가, 1920년 9월 단장 김현재, 부단장 박응률, 서기 김재성(金在成), 재무 황종해, 교통원(交通員) 조준묵(趙濬默) 등으로 개편되었다. 평남 강동(江東)ㆍ대동군과 평북 철산군의 조선인 자산가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거나 단원들로부터도 거두어, 김봉규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보냈다.
이운서가 활동했던 맹산 지역의 조직 역시 1920년 11월 김봉규를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이 지역의 대한독립청년단은 맹산군 선유봉(仙遊峯) 호랑이굴(虎穴) 안에 본부를 두었다. 안국정(安國鼎)ㆍ이원보(李元甫)ㆍ나병삼(羅炳三)ㆍ나신택(羅信澤)ㆍ조신성(趙信聖) 등을 위시하여 단원이 수백 명에 달하였으며, 이운서ㆍ나신택 등 현직 순사와 면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군자금 모집뿐만 아니라 일제 경찰 총살, 면사무소 등 하급행정기관 공격과 무기 탈취 등 무장항쟁을 전개하였다. 또 본부인 호랑이굴 안에 인쇄기 3대와 주자(鑄字) 12,000여 개를 사들여 유고문(諭告文), 군자금모집용납입고지서 영수증, 입단지원서 등을 인쇄하였다.
이운서는 현직 순사의 신분으로 대한독립청년단에 가입하여, 1921년 1월 15일 평남 영원군(寧遠郡) 영원읍내에 있던 자신의 집을 동지들의 회합 장소로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또한 영원경찰서(寧遠警察署)를 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친일파인 조선인 순사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며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21년 봄 일제 경찰에 이와 같은 활동이 드러나, 6월 20~21일 사이에 맹산경찰서에서만 이운서를 포함한 83명이 체포되었다.
1921년 10월 19일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1922년 3월 28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르다 1925년 8월 17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平壤覆審法院 : 1922. 3. 28)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秘密結社大韓獨立靑年團聯合會檢擧의 件(1921. 7. 11)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2)
- 東亞日報(1921. 7. 4, 9. 20, 10. 5, 10. 9, 10. 21, 11. 6, 11. 23, 1922. 2. 11)
- 每日申報(1921. 10. 21, 11. 6, 11. 23)
- 獨立新聞(1921. 10. 28, 12. 6)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編, 1967) 제1권 分冊 631~63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1250~1254면, 제14집 499면, 5 518~519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5권 286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7권 398~406면
- 朝國獨立史(金承學, 1970) 하권 2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