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임진왜란 때 금산 7백의사(錦山七百義士)의 지도자인 고경명(高敬命)의 후예로서 그의 일문인 녹천 고광순(鹿泉 高光洵) 의병장을 따라 녹천 의진에는 많은 고흥 고씨가 참여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형 고석진(高石鎭)과 아우 고예진(高禮鎭)과 함께 면암(勉菴) 의진에 소속되어 활약하였다. 1906년 6월 4일(음 윤4월 13일) 면암이 고용진의 고향인 태인의 무성서원(泰仁 武城書院)에서 강회(講會)를 열어 태인 일대의 유생들을 규합하여 의거의 기치를 올렸다.
면암이 태인을 거점으로 삼게 된 것은 그의 참모인 돈헌 임병찬(遯軒 林炳瓚)이 추천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때 고용진은 강종회(姜鍾會) 등 포수 30여 명을 거느리고 휘하에 소속되었다. 이로써 유생들로만 구성되어 자칫 유약하기 쉬운 의진의 기세를 드높일 수 있었으나 끝내 적에게 패하였다. 1913년 9월 을사의병운동때 같은 면암 의진에서 활약한 바 있던 임병찬이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하고 각 도에 도순무총장(道巡撫總將)을 두고 각 군에는 군수, 면에는 향장(鄕長)을 두고 국권반환요구(國權返還要求)를 할 때 다시 참가하여 활약하였다. 그리하여 1914년 2월 칙령으로 종2품 가선대부독립의군부 회계 총관(從二品 嘉善大夫獨立義軍府 會計 總管)으로 임명되어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그후 1919년 4월에는 파리장서운동(巴里長書運動)에도 참여하여 호남지방 유림 서명운동(湖南地方儒林署名運動)을 전개하였다고도 한다. 유고(遺稿)로서 송천집(松川集)이 전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칙명 광무 18년 2월 진본칙령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37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2권 84 635 636면
- 고등경찰요사 17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