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황해 평산(平山) 사람이다.
1907년 7월 한국군대가 해산되고 항일의병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봉기하자 왕이 전(前) 군부대신 신기선(申箕善)을 시켜 밀지를 박기섭(朴箕燮)에게 전달함에 황해도의 유림인 채홍두(蔡洪斗)·신재봉(申在鳳)·신필수(申弼秀)·오식영(吳植英) 등이 봉기하고, 박기섭을 의병장으로 추대한 후 평산(平山)의 도평산(桃坪山)에 의병진을 정하고, 격문을 각 지방에 돌리자 4천여명이 모였는데 이때에 서기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07년 10월 9일 동 의병진은 유격전을 주축으로 활동하여 배천읍(白川邑)을 습격하여 군아분견소(軍衙分遣所)·우편국 등을 점령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연안읍(延安邑)을 습격하는 등 작게 19차례에 걸쳐 왜군과 싸워 전승을 거두며 크게 타격을 입혔으나 군비가 점차 쇠퇴하여짐에 살아남은 의병들은 동삼성(東三省)으로 망명하여 조국광복을 위하여 계속 활동하였다고 한다.
그는 동지 이진룡(李鎭龍)·심노술(沈魯述)·우병열(禹炳烈) 등과 함께 동삼성으로 망명하여 이소응(李昭應)에게 사사하면서 구국운동을 계속하다가 귀국후에는 1921년 7월 31일 당시 서울 사직동(社稷洞)으로 이사하여 인왕산(仁旺山) 밑에서 족보편찬 등 종중사(宗中事)와 후진을 양성하는 교육에 힘쓰다가 1938년 9월 12일 타계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624∼6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