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황해도 봉산(鳳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3일, 이기호(李基浩)·전양준(田養畯)·김승신(金承信)·최정건(崔貞健)·함치각(咸致恪)·나한빈(羅漢彬) 등과 사리원(沙里院) 일대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는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식이 거행되고 만세시위가 전개되었음을 알고, 사리원에서도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계획하였다.
이에 천도교 및 기독교인들과 은밀히 연락하여 시위준비를 하였다.
3월 3일 오후 4시경 5백여명의 시위군중이 모이자, 그는 이들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벌였다.
시위대열의 위세에 눌린 일본 경찰조차도 만세를 따라 불렀다.
그러나 각지에서 응원병력이 도착하여 일본 경찰과 헌병에 의해 시위군중은 강제로 해산되고, 그는 일경의 일제 검속 때 체포되었으며, 이해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위반 혐의로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275·27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718면